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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유럽 의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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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단일 유럽 의정서는 1980년대 유럽 경제 공동체(EC) 회원국 간의 무역 자유화와 단일 시장 구축을 목표로 체결된 조약이다. 1985년 12월 룩셈부르크에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1986년 2월 룩셈부르크와 헤이그에서 서명, 1987년 7월 1일 발효되었다. 이 조약은 무역 장벽 제거를 통해 고용 성장을 기대했으나, 단기적으로 고용 조건 악화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영국은 마거릿 대처 총리 재임 시절 이 조약을 주도했으나, 이후 브렉시트 결정으로 2020년 1월 유럽 연합에서 탈퇴하면서 단일 유럽 의정서에서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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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유럽 의정서
조약 정보
명칭단일 유럽 의정서
원 명칭단일 유럽 의정서
종류수정 조약
인용이전 수정 조약: 합병 조약 (1965년)
이후 수정 조약: 마스트리흐트 조약 (1992년)
초안 작성일알 수 없음
서명일1986년 2월 17일
룩셈부르크 시, 룩셈부르크
1986년 2월 28일
헤이그, 네덜란드
날인일알 수 없음
효력 발생일1987년 7월 1일
효력 발생 조건알 수 없음
만료일알 수 없음
서명국알 수 없음
당사국EU 회원국
비준국알 수 없음
기탁 기관이탈리아 정부
사용 언어덴마크어
네덜란드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그리스어
아일랜드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위키소스단일 유럽 의정서
각주1986년 SEA 조약에 의해 수정된 내용: http://www.cvce.eu/en/obj/treaty_establishing_the_european_atomic_energy_community_rome_25_march_1957_consolidated_version_1986-en-a8011e8b-1b73-4545-81b9-ce0d1cf72c5f.html 1986년 EURATOM 조약 통합본
http://www.cvce.eu/en/obj/treaty_constituting_the_european_coal_and_steel_community_paris_18_april_1951_consolidated_version_1986-en-ceccc754-d0da-4f18-9b8f-dc4ed18ac0ff.html 1986년 ECSC 조약 통합본
http://www.cvce.eu/en/obj/traite_instituant_la_communaute_economique_europeenne_rome_25_mars_1957_version_consolidee_1986-fr-074d5033-3737-45ec-9887-b455e44cc990.html 1986년 TEEC 조약 통합본
내용단일 유럽 시장과 유럽 정치 협력을 공식적으로 설립
관련 조약로마 조약

2. 배경

1980년대 유럽 공동체(EC) 회원국들 사이에서 자유 무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커지면서 단일 유럽 의정서 체결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2] 기업과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 간 법률을 조화시키고 정책 불일치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에 유럽 위원회는 공동 시장 개혁에 관한 백서를 발표하였고, 제도 개혁에 관한 두지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92년까지 공동체 내에 "단일 시장"을 창설하는 것을 목표로 단일 유럽 의정서가 체결되었다.[2]

단일 유럽 의정서는 단일 시장의 성립을 위해 각국에 남아있는 장벽을 제거하고, 제도적 조정을 통해 유럽 각국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각 기관의 의결 절차가 개정되어 유럽 연합 이사회의 특정 다수결 방식을 적용하는 분야가 확장되었다. 단일 시장 성립의 목표 기한은 1992년으로 정해졌다.

의정서에서는 훗날 유럽 연합에서의 공동 외교·안보 정책의 기원이 되는 유럽 정치 협력의 개념이 정식으로 도입되었다.

3. 주요 내용

단일 유럽 의정서(SEA)는 유럽 공동체 간 무역 거래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되었다. 정치·경제 통합을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으며, 공동체는 공통 시장의 특질과 단일 시장 성장에 필요한 조건을 조사하여 통합법의 기틀을 다졌다. 1985년 12월 룩셈부르크 유럽 위원회에서 정치적 합의에 따라 조인되었다.

SEA의 핵심은 유럽 연합1992년까지 단일 시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으나, 이는 희망 사항이었고 개별 국가의 헌법 개정 등 후속 조치가 필요했다.

이 조약은 무역 자유화가 고용 성장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널리 홍보되었다. 자크 들로르 EC 위원회 의장은 "추세를 반전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9]

비준 당시 EC는 높은 실업률을 보였다.[10] 1992년 4월 기준, 노동력의 9% 이상이 실업 상태로, 미국(7.1%), 일본(2.2%)과 큰 차이를 보였다. 1980년대 후반 EC 고용 증가율은 1950년대 이후 가장 빨랐지만, 실업률은 8.3%에 머물렀다.[11]

공식 세키니 보고서는 고용 증가를 단일 시장의 "가장 중요한 이점"으로 꼽았으나, 주의사항도 있었다. 1992년 이후 국경 간 합리화와 경쟁 심화로 단기적 일자리 감소 또는 고용 조건의 가치 하락이 예상되었다. 파판드레우는 고임금 경제에서 국경 간 경쟁과 구조 조정 심화로 파트타임, 외부 작업, 임시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 예상했다.[12] 이는 복지 및 형평성 손실 가능성을 시사했다.

단일 시장의 고용 효과에 대한 두 번째 유보는 회원국의 제한적 거시 경제 정책이 반전 또는 완화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했다. 세키니 보고서의 중장기 추정치(440만 개 일자리 추가)는 무역 장벽 제거, 인플레이션 압력 및 대외 수지 제약 완화, "확장적 경제 정책" 활용을 가정했다.[13]

SEA는 회원국들이 유럽 통화 연합(ECU)에 필요한 "경제 및 통화 정책 수렴"을 촉진하도록 했다. 경제 및 통화 연합 기준은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맡겨졌으며, SEA는 이 기준이 "유럽 통화 시스템(EMS) 내 협력 경험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4]

3. 1. 단일 시장 구축

1980년대 유럽 공동체(EC)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자유 무역에 관한 제도 정비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정계와 재계에서는 각국 간의 법률을 조화시키고 정책의 불일치를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2]

유럽 위원회는 유럽의 공통 시장 성립 가능성과 성립 과정을 분석하여 역내 시장에 관한 백서로 정리했다. 이 백서를 바탕으로 단일 유럽 의정서가 작성되었다.

단일 유럽 의정서에서는 단일 시장의 성립을 위해 각국에 남아있는 장벽 제거, 제도적 조정, 유럽 각국의 경쟁력 향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각 기관의 의결 절차가 개정되어 유럽 연합 이사회의 특정 다수결 방식을 적용하는 분야가 확장되었다. 단일 시장 성립의 목표 기한은 1992년으로 정해졌다.[3]

3. 2. 제도 개혁

단일 유럽 의정서는 유럽 공동체 내 자유 무역 부재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단일 시장 형성을 가속화하기 위해 제도 개혁을 추진한 결과물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협력 절차 도입: 유럽 의회에 입법에 대한 실질적인 발언권을 처음으로 부여했다.[2] 유럽 의회는 유럽 위원회의 제안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힐 수 있었고, 이사회는 가중 다수결로 입법 제안을 채택할 수 있었다. 다만,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의회의 법안 거부를 무효화할 수 있었다.[3]
  • 가중다수결제 확대: 입법 절차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 이사회의 가중다수결제 적용 분야를 확장했다. 이는 1992년으로 예정된 단일 시장 성립 목표 기한을 맞추기 위한 조치였다.
  • 유럽 정치 협력: 회원국 간 외교 정책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유럽 정치 협력 개념을 정식으로 도입했다. 이는 훗날 유럽 연합의 공동 외교·안보 정책의 기원이 되었다.

4. 체결 및 비준

1985년 12월 3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유럽 이사회에서 외무 장관들이 최종 텍스트를 확정하면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덴마크이탈리아는 헌법적 유효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4] 벨기에,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 프랑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 9개국은 1986년 2월 17일 룩셈부르크에서 단일 유럽 의정서에 서명했다.[4]

덴마크 의회는 1986년 1월, 단일 유럽 의정서를 거부했다. 덴마크 야당은 이 조약이 유럽 의회의 권한을 확대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조약에 반대했다.[5] 덴마크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고, 1986년 2월 27일에 실시된 국민 투표는 투표율 75.4%로 찬성 56.2%, 반대 43.8%로 덴마크 국민의 승인을 받았다.

이탈리아 정부는 조약이 유럽 의회에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서명을 늦추었다.[6] 덴마크, 이탈리아, 그리스1986년 2월 28일 헤이그에서 단일 유럽 의정서에 서명했다.

아일랜드 대법원은 Crotty v. An Taoiseach 재판에서 아일랜드 헌법을 개정해야 조약을 비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국민 투표는 1987년 5월 26일에 실시되었으며, 투표율 44.1%로 찬성 69.9%, 반대 30.1%로 아일랜드 유권자들의 승인을 받았다. 아일랜드는 1987년 6월 단일 유럽 의정서를 공식적으로 비준하여 조약이 1987년 7월 1일에 발효될 수 있도록 했다.

5. 영향 및 평가

1980년대 유럽 ​​공동체(EC)는 역내 자유 무역 제도 정비가 미흡하다는 점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했다. 이에 따라 정계와 재계에서는 각국의 법률 및 정책 불일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9]

유럽 ​​위원회는 유럽의 공통 시장 성립 가능성과 과정을 분석하여 역내 시장에 관한 백서를 작성했다. 이 백서를 바탕으로 단일 유럽 의정서가 만들어졌으며, 단일 시장 성립을 위해서는 각국에 남아있는 장벽 제거, 제도적 조정, 유럽 각국의 경쟁력 향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유럽 연합 이사회의 특정 다수결 방식 적용 분야를 넓혀 의결 절차를 개선했다. 단일 시장 성립 목표 기한은 1992년으로 정해졌다.[10]

단일 유럽 의정서에서는 유럽 연합의 공동 외교·안보 정책의 기원이 되는 유럽 정치 협력 개념이 정식으로 도입되었다.

단일 유럽 의정서는 고용 성장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1973년 석유 파동 이전 수준으로 실업률을 낮추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비준 당시 EC는 높은 실업률을 보였고, 1992년에는 노동력의 9% 이상이 실업 상태였다. 단일 시장의 고용 효과는 회원국의 거시 경제 정책 완화 여부에 달려 있었으며, 유럽 통화 시스템(EMS) 내 협력은 정부가 고용 촉진을 위한 확장적 정책을 고려하기 어렵게 만들었다.[14]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끌던 보수당 내각 시절, 영국은 단일 유럽 의정서(SEA) 구성을 주도했다. 대처는 이 법안을 통해 영국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유럽에 대한 "자유 무역" 비전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단일 시장을 추진하면서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압력으로 미래의 유럽 연합과 단일 통화(통화 동맹)에 대한 언급을 받아들여야 했다.[17] 이러한 양보는 훗날 마스트리흐트 조약 및 후속 조약으로 이어져 영국을 "연방 유럽"에 묶어두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결국 브렉시트로 이어지는 2016년 국민투표의 배경이 되었다.[18]

5. 1. 고용에 미친 영향

단일 유럽 의정서는 무역 자유화를 통해 고용 성장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을 바탕으로 널리 홍보되었다. 자크 들로르 EC 위원회 의장은 "추세를 반전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1973년 석유 파동 이전 수준으로 실업률을 낮추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9]

비준 당시 EC는 높은 실업률을 보였는데, 1992년 4월 기준 노동력의 9% 이상이 실업 상태였다. 이는 미국의 7.1%보다 높았고, 일본의 2.2%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1980년대 후반 EC의 고용 증가율은 빨랐지만, 실업률은 8.3%에서 정체되었고, EC 사회 문제 위원회 바소 파판드레우는 실업 문제가 만연하다고 판단했다.[11]

공식 세키니 보고서는 고용 증가를 단일 시장의 가장 큰 이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국경 간 합리화와 경쟁 심화로 인해 고용 조건이 악화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파판드레우는 임금이 높은 국가에서 경쟁과 구조 조정으로 인해 파트타임, 외부 작업, 임시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12] 이는 사회 보장 제도에 영향을 미쳐 복지와 형평성 손실을 초래할 수 있었다.

단일 시장의 고용 효과는 회원국의 거시 경제 정책 완화 여부에 달려 있었다. 세키니 보고서는 무역 장벽 제거로 440만 개의 일자리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와 확장적 경제 정책 활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13]

단일 유럽 의정서는 회원국들이 유럽 통화 연합(ECU)에 필요한 경제 및 통화 정책 수렴을 촉진하도록 했다. 이는 유럽 통화 시스템 (EMS) 내 협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4] EMS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환율 변동 방지를 위해 엄격한 재정 및 통화 정책을 시행하도록 했으며, 이는 정부가 고용 촉진을 위한 확장적 정책을 고려하기 어렵게 만들었다.[10]

5. 2. 영국과의 관계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끌던 보수당 내각 시절, 영국은 단일 유럽 의정서(SEA) 구성을 주도했다. 대처가 지명한 단일 시장 담당 집행위원 아서 코크필드 경이 최초의 백서를 작성했다.[15]

대처에게 이 법안은 영국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유럽에 대한 "자유 무역" 비전을 실현한 것이었다. 공동 시장의 관세 철폐 약속 외에도, 이 법안은 "상이한 국가 표준, 서비스 제공에 대한 다양한 제약, 그리고 외국 기업의 공공 계약 배제"로 인해 발생한 공동체 내 무역 장벽을 철폐하는 것이었다.[16] 영국과 파트너들은 "일본보다 크고, 미국보다 큰" 구매력을 가진 단일 시장을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 보험 회사가 공동체 전체에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 (영국 경제에서 금융 서비스는 막대한 역할을 했다).
  • 사람들이 공동체 전체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직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
  • 상품이 시간 소모적인 지연 없이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도록 관세 장벽 및 절차를 제거하는 조치.
  • 모든 회사가 방해 없이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
  • 공동체 전체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조치.[16]


그러나 단일 시장을 추진하면서 대처는 보수당 내에서 치명적이라고 여기는 타협을 했다.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압력으로, 미래의 유럽 연합과 단일 통화(통화 동맹)에 대한 언급을 받아들였다.[17]

이러한 양보를 바탕으로 마스트리흐트 조약 및 후속 조약이 영국을 진화하는 "연방 유럽"에 묶어두었다고 주장하며,[18] 2015년 보수당의 "유럽 회의론자"들은 영국의 지속적인 조약 가입에 대한 국민 투표를 확보했다. 영국이 "아이슬란드에서 러시아 국경까지의 유럽 자유 무역 지대"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19] 공식적인 브렉시트 투표 운동과 그 동맹국들은 "브렉시트"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승리했다. 단일 시장과의 규제 조화를 기반으로 한 단일 시장 또는 자유 무역 협정의 지속적인 회원 자격을 협상하라는 요구를 거부한 후,[20] 2019년 10월 브렉시트 탈퇴 협정의 조건에 따라 보리스 존슨의 보수당 정부는 2020년 1월 말에 영국을 유럽 연합에서, 따라서 SEA에서 탈퇴시켰다.

6. 유럽 연합 조약과 구조의 타임라인

서명발효조약
1948년1948년브뤼셀 조약
1951년1952년파리 조약
1954년1955년파리 협정
1957년1958년로마 조약
1965년1967년통합 조약
1986년1987년단일 의정서
1992년1993년마스트리흐트 조약
1997년1999년암스테르담 조약
2001년2003년니스 조약
2007년2009년리스본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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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유럽 ​​공동체(EC)는 역내 각국 간의 자유 무역에 관한 제도 정비 부족을 중요한 과제로 인식했다. 정계와 재계에서는 각국 간의 법률 조정과 정책 불일치를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럽 ​​위원회는 유럽의 공통 시장 성립 가능성과 그 과정을 분석하여 역내 시장에 관한 백서로 정리했다. 그 후 이 백서를 바탕으로 단일 유럽 의정서가 작성되었다.

단일 의정서단일 시장을 성립하기 위해서 각국에 남아있는 장벽을 제거하고, 제도를 조정하며, 유럽 각국의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각 기관의 의결 절차가 개정되어 유럽 연합 이사회의 특정 다수결 방식을 적용하는 분야가 확장되었다. 단일 시장 성립 목표 기한은 1992년으로 정해졌다.

의정서는 훗날 유럽 연합에서 공동 외교·안보 정책의 기원이 되는 유럽 정치 협력의 개념을 정식으로 도입했다.

참조

[1] 간행물 Single European Act https://eur-lex.euro[...] 1987-06-29
[2] 서적 EU Law: Text, Cases and Materials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3] 문서 Article 7 of the Single European Act amending Article 7 of the [[Treaty establishing the European Economic Community]].
[4] 웹사이트 The signing of the Single European Act http://www.cvce.eu/o[...] CVCE 2013-05-04
[5] 뉴스 Danish Parliament votes to reject EEC reforms 1986-01-22
[6] 뉴스 Ireland to sign EEC foreign policy treaty today 1986-02-17
[7] 뉴스 Single Act ratified by 11 states 1986-12-31
[8] 뉴스 Court delays ratification of European Act 1986-12-25
[9] 서적 Europe, a new Frontier for Social Democracy Cassell, London 1989
[10] 간행물 European Labour in a Single Market: '1992' and the Implications of Maastricht https://www.scienced[...] 1994
[11] 서적 Employment in Europe, 1991 Office of Official Publications of the EC 1991
[12] 문서 European Commission (1991) pp. 39, 79.
[13] 서적 The Economics of 1992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14] 간행물 Single European Act https://eur-lex.euro[...] 1987-06-29
[15] 웹사이트 Margaret Thatcher, the critical Architect of European Integration https://ukandeu.ac.u[...] UK in a Changing Europe 2020-09-21
[16] 웹사이트 Speech opening Single Market Campaign (1988) https://www.margaret[...] Margaret Thatcher Foundation 2020-09-21
[17] 웹사이트 Margaret Thatcher, the critical Architect of European Integration https://ukandeu.ac.u[...] UK in a Changing Europe 2020-09-21
[18] 서적 Against a Federal Europe: the Battle for Britain Duckworth 1991
[19] 웹사이트 'Leave' looks like... http://www.voteleave[...] Vote Leave 2020-09-21
[20] 뉴스 UK will refuse close alignment with EU rules, Johnson to say https://www.theguard[...] 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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